최하늘의 작업실에서
프리즈 서울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조각가 최하늘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퀴어들의 삶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신체와 맺는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리즈 서울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조각가 최하늘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퀴어들의 삶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신체와 맺는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하늘의 작업실은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곳이자 퀴어 커뮤니티의 오랜 거점인 이태원이 있는 용산구에 자리한다. 이곳에서 사회적 규범 아래 퀴어 몸들이 겪는 체념과 도전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강철과 실리콘, 추상과 구상을 조합한 그의 조각은 신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된 작품들은 때때로 작가 자신도 놀랄 정도로 생생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 너무 사람 같아서, 작업실에서 돌아볼 때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어요.”
프리즈 서울 2025에서 P21 갤러리와 함께 선보일 신작을 준비 중인 최하늘은 신체 내부에 대한 강박적인 상상, 독특한 소재 선택, 그리고 대안적인 가족 체제에 대해 고찰한다.
문재연(MM) 작업 공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하늘(CH) 용산구 리움 미술관 근처에 작업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업한 지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원래는 3층 건물 전체가 식당이었는데, 식당 주인분께서 연세가 드셔서 1층만 사용하시고 2, 3층은 임대를 놓게 되어 제가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MM 작업실 한쪽 벽면은 검은색 잉크 드로잉으로 가득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드로잉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CH: 최근에는 주로 먹으로 드로잉을 합니다. 동세(動勢)와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먹과 붓이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정밀한 드로잉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제 감정에 집중하여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종의 대시보드와 같은 거죠. 모든 드로잉이 작품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거나 여유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그립니다. 이 드로잉들을 축적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생각을 쌓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MM 작업실에서 특별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나요?
CH 작업실 벽에 붙어있는 지인이 그려준 부적이에요. 원래 부적은 봉투에 넣어 보관해야 하고 봉투를 개봉하는 순간 효력을 잃는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봉투를 열게 되어 부적을 보게 된 것이죠.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닙니다. 단지 그림과 문양 자체에 형식적인 흥미를 느낄 뿐입니다. 상형 문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부적 대백과』라는 책을 보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MM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할 신작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CH 〈Nephew〉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한국어로 ‘조카’를 의미하는 이 작품은 2023년부터 작업해 온 《Uncle》 연작의 새로운 제목입니다. ‘Uncle’은 한국어로 삼촌을 뜻하는데, 사람들은 종종 저를 ‘삼촌’ 또는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이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성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죠. 이러한 지칭어가 퀴어 정체성과 맞물리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도 다니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Uncle》 연작을 통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저를 여러 모양과 형태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2025년부터는 《Uncle》이라는 제목 대신 가족의 다양한 구성원을 포함하는 제목으로 바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MM ‘가족’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CH 퀴어 사람들은 가족 제도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퀴어들이 결혼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릴 때부터 퀴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성애 규범적인 가족 제도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며,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제도는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새로운 대안 가족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념에 대한 의구심이 이 시리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죠. 이번에 공개할 작품은 어렴풋한 이미지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오줌을 싸는 남자아이의 형상으로 드러났고, 여기서 〈Nephew〉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MM 주로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시나요?
CH 작업 전반에 걸쳐 플렉시글라스를 많이 사용합니다. 투명하면서도 공간을 구획할 수 있는 매력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죠. 육면체 형태를 플렉시글라스로 감싸면 매우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눈에는 보이지만 직접 만질 수는 없는 오브제가 어딘가에 갇혀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듯했습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 출품할 작품은 시멘트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만든 미니멀한 조각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실리콘으로 재료의 표면을 코팅하여 마치 인간 피부와 유사한 질감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금속 재료로 만든 이번 작업은 좀 더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실험들을 통해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MM 실리콘으로 코팅된 신체 일부의 단면 조각들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CH 20대 초반, 작업 도중 손가락을 다치면서 처음으로 제 몸의 단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미지에 깊이 매료되었는데, 이는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몸 내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은, 이를테면 편도선염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로 목 안을 본다거나 상처 부위를 조심스레 벌려보는 정도로 제한적이죠. 손가락이 잘려 완벽한 단면을 목격한 것은 강렬한 경험이었고, 이후 제 몸속을 상상하는 조각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M 지금까지 신체를 단면으로 나누거나 여러 육면체를 조합하는 형태의 작업물을 선보여 오셨습니다. 이러한 해체와 재구성의 행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CH 제 몸이 온전히 저의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문신을 받을 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제 몸을 스스로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사회적 규범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것에 대한 저항이나 체념으로부터 출발해, 인체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 작업에서 인체는 때로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때로는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언제나 완전한 몸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잘라내어 재조합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MM 신체를 구속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해 느끼신 반발과 체념의 양상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CH 2023년에 대마초 흡연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한국 법률상 대마초 흡연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죠. 당시 저는 인신구속을 겪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몸의 주인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습니다.
몸에 대한 주인성을 잃으면 그 정서나 감각들에 익숙해져서 이내 체념하거나, 혹은 거기에 대한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퀴어로서 저는 제 몸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느껴왔고, 특히 앞선 사건을 계기로 제 몸이 온전한 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온전한 몸이라는 것은 그냥 환상에 불과하며, 이는 그저 부분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MM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시나요?
CH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전환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생각은 판타지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세상의 모든 변화는 점층적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예술 작품 하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꾸준히 내다 보면 감화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정서적 교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미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믿음만큼은 변함없습니다.
추가 정보
프리즈 서울, 코엑스, 9월 3일 –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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